2021. 3. 8. 07:16ㆍ일상 생활
오랫만에 서교동 동사무소에 들려서 양곡 신청부터 시작해서
구글 애드센스 광고 수익 금액 돈이 생겨서 소득 신고에 필요한 서류 작성과
신청 서류를 접수를 하고
재활용 폐기물 쓰레기를 버릴때 필요한 폐기물 쓰레기에 부착이 필요한
종이 딱지를 구입을 해야 하는 바쁜 일정이 생겼습니다.
서교동 동사무소에 들려서 고시원 전입 신고를 하는 일부터 시작을 해서
여러차례 서교동 동사무소에 놀러왔는데 바로 건너편 커다란 주택이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1972년에 집을 만들고 이후부터 가족 분들과 생활을 하셨던 자택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중국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 때문에 대한민국은 전시와 똑같은 상황에
거리두기 상황에 맞춰서 2.5단계에서는 자택의 문을 열지 않고 공개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관람은 하고 싶어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문제도 있었습니다.
동사무소에 잠시 들려서 후딱 급하게 필요한 신청 서류 작성과
재활용 폐기물 쓰레기를 버릴때 필요한 스티커 종이 딱지를 구입을 하고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커다란 대문 앞에 찾아가서 이리 저리 기웃 거리면서 사진 촬영을 하고
대문 앞에 설치된 안내 설명 내용을 천천히 읽어봤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관람을 하고 싶으신 분들은 휴식 시간을 가지는 날짜는 빼고
사회 거리두기 단계는 2단계 아래로 낮추고 내려갔을때 전화통화를 걸어서
관람이 가능한지 문의를 드려서 찾아가시는게 좋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낮춰도 일반인 분들이 관람을 할수가 있도록
바로 개방을 하지 않고 준비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먼저 전화통화를 걸어서 휴무일 날짜,관람이 가능한 날짜를 정확하게
확인을 해보고 가셔야 무작정 찾아갔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서
집으로 돌아가는 헛걸음을 하지 않습니다.
뚱뚱한 남자는 무대뽀라서 마침 서교동 동사무소에 필요한 일들이
있어서 놀러와서 건너편에는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이 있는데 잠시라도 둘러보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문 앞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도둑놈
대낮에 손님도 아니고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지방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cctv 보안 용도로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너무나도 많아서 뚱뚱한 남자는 담력이 약해서 그런 나쁜 짓을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자택의 대문 주변에서 이리 저리 기웃 기웃 거리면서
1970년대
중산층
부자집 나으리들이 생활을 하셨던 50년 나이와 세월을 가진
옛날 주택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신기해서 한참을 주변에서
사진 촬영을 하면서 구경을 했습니다.
1970년대에 돈이 많은
중산층
부자집 사람들 , 나으리들이 아니면 살수가 없는
돈이 없지만 착하고 가난한 서민은 눈을 감고 죽기전에 한번만이라도
이런 멋진 주택에서 생활을 할수가 있을까.?
이렇게 이루기 어려운 소원과 아름다운 꿈들을 간직 하면서
귀중한 기록이 남겨진 영상 자료에서 만날수 있는 50년전 옛날 모습 그대로
남겨진 중산층 , 나으리들이 생활을 하셨던 집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보존을 시켜서 서울시에서는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생활에 맞춰서 필요한 기능한 추가를 시킨 모습이 전부이고
하얀색 초인종이 보여서 버튼을 눌러서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의 관람에 대해서 지금 시간에 오늘도 관람이 가능한지 조심스럽게
여쭤보고 문의를 드리고 관람을 허락 받아서 대문이 열려 있어서
조심스럽게 커다란 대문의 옆자리 쪽문을 밀어서 들어갔습니다.
고물 중고 카메라는 자동 설정을 맞춰서 어떻게 사진 자료가 나오나 궁금해서
사진 촬영 자료를 나중에 확인을 해보면 햇빛의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장소에서는
일을 하기 싫어서 누렇게 사진이 촬영됩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넓은 정원
주택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갈수가 있는 1층 자택의 창가 자리에는
관람에 필요한 안내와 동선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 내용을 담아서
표지판을 만들어서 안내를 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아서 관리를 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지만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멋진 주택 앞에 넓은 정원에 담벼락을 따라서 나무가 심어진 구석 자리에서는
이제는 오염된 서울의 도심속에서는 만나기 힘들고 어려운 야생 식물이 자라난
모습이 보여서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봤습니다.
요즘에 나약한 얼라들은 지나칠 정도로 위생을 심하게 강조를 하고
있는데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닐때 꽃의 이름은 갑자기 기억은
떠오르지 않지만 꿀이 나오는 빨간 정렬적인 색상을 가진 꽃이 보이면
불알 친구 녀석들과 같이 달콤한 꽃에서 나오는 물을 먹기 위해서
개미가 들어가 있어서 일을 하는 모습이 보이면
개미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흙 밭에 털어서 집으로 보내주고
개미가 들어가 있었지만 상관을 하지 않고 꽃을 통해서 먹을수 있는
쬐금이지만 꽃에서 나오는 달콤한 꿀물을 먹으면서 지저분하게 생활을 했어도
지금은 50살 나이를 먹은 어른이 되버린 불알 친구 녀석들을 보면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건강하고 여전히 엄니에게 등짝을 처맞고 서럽게 울고 다니는 동네 골목길
철부지 개구장이들입니다.
1980년대는 그나마 환경 오염의 문제가 덜해서 자연속에서 만나고 먹을수 있는
야생 딸기 식물이 보이면 불알 친구 녀석들과 야생 딸기를 따서 먹고
동네의 가까운 하천에 놀러가서 빨가 벗고 멱을 감으며 신나게 물속에 들어가서
물장구를 치면서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놀았습니다.
작은 단층 높이를 가지고 있지만 마당 , 정원 구석의 담벼락 주변에
나무가 심어진 자리에 돌탑을 아주 작게 쌓아서 만들어놓은 모습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과거
현대
주변에 신축 새로 만들어서 높이 쌓아 올려서 지어진 건물과 모습이
조화를 이뤄서 공존을 하고 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에 들어오면은 50년전 옛날에 생활을 하는 주택과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만날수 있어서 아주 잠시 잠깐이지만 과거로 돌아간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
1980년대의
중산층
부자집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누가 촬영을 했는지 기록까지는 알수가 없지만
사진에 보이는 넓은 정원 주택에 파라솔이 설치된 야외 탁자에 앉아서
아부지와 어머니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대화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은 가끔씩 의자에 앉아서 마당에서 키우는 커다란 대형견
강아지와 신나게 놀고 있는 즐거운 모습을 촬영한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꿈만 같았던 생활을 하고 있는 부러운 모습이
담겨진 영상 기록 자료를 저장한 귀중한 영상을 50년 세월이 흐르고
한국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만날수 있었습니다.
정원에 파라솔 커다란 우산을 펼쳐서 야외 탁자가 놓여진 모습을 구경을 하고
있으면 영상속에서 만나고 볼수가 있었던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생활을 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1970년대
50년 세월이 흘러서 튼튼하게 만들어져서
중산층
부자집 나으리들이 생활한 주택을 둘러보면서
뚱뚱한 남자는 한번만이라도 이런 집에서 살아봤으면
혼자서 중얼 중얼 거리면서 부러워 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의 넓은 마당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차고지가 보여서 가까이 다가서서
구경을 해보면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께서 살아 생전에 서거를 하시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는 날까지 실제로 사용을 하셨던 자동차 차량을 그대로 보존을 시켜서
차고지에 주차를 시켜서 문화 유산 자료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차량 등록을 마치고 사용한 번호판까지 그대로 부착이 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
1970년대에 태어나서 달동네에서 생활을 했을때 이런 모양의 펌프는 아니지만
가난한 달동네 아이들은
소중한 가족 부모님께서 지하수에 연결된 펌프를 통해서 손잡이를 붙잡고
펌프질을 하면서 물을 끌어올리고 길어서
식수
씻는 용도로 사용을 해왔습니다.
고사리와 똑같은 작은 손을 가진 얼라들은 당연히 힘이 없어서
힘이 좋은 강한 아부지께서 펌프로 커다란 빨간 대야에 가득하게 물을 담아서
여러 사람이 생활을 하는 달동네 공동 주택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준비된 물을 가지고 바가지로 물을 떠서 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진 야외 세면장에서
사계절동안 추위에 상관을 하지 않고 씻으며 생활을 했습니다.
겨울 추운 날씨는 지금의 현재 겨울과 추위가 달라서 굉장히 추워서
씻는 일들이 싫어서 자주 씻지를 않는 게으른 습관이 몸베 베여서
겨울 추운 날씨는 자주 펌프에 물이 얼어서 뜨거운 물을 부어가면서
녹여서 사용을 하고
야외 세면장에서는 얼라들은 국민학교에 등교할 준비를 하면서
하늘에서는 예쁜 눈이 내리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라도 머리카락과 다양한 더러운 이물질이 붙어 있는
빨래 비누를 손에 들어서 머리를 대충 감고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불알 친구 녀석들을 불러서 천천히 길을 걸어가면서
30분 거리에 떨어진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달동네 아이들의 생활 모습은 이렇게 열약한 생활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제대로 자주 씻을수가 없어서
머릿니
(머리에 이가 수십 마리가 기어다녀서 엄니가 참빗을 손에 들고
하얀색 달력 종이를 야외 세면장 옆자리 젖지 않은 바닥에 펼쳐서
싫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등짝을 처맞고 세상이 떠나갈듯이 서럽게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손목을 강제로 도망을 갈수가 없도록 붙잡혀서
불알 친구 녀석들까지 주변에서 아빠에게 도망을 가지 못하게 손목을 붙잡혀서
참빗을 가지고 머리를 빗으면 55마리의 머릿니(이)가 신나게
하얀색 달력 종이를 가득하게 채우고 신나게 뒹굴거리며 노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머리를 가려워 해서 밤에 잠을 못자고 박박 머리를 긁어가면서 우는 얼라들을 붙잡아서
머릿니를 잡아서 달력위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머릿니(이)를 손으로 지긋히 눌러주면은
툭툭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얀색 종이에 달력은 빨갛게 변하던 무
서운 모습들 추억이 떠오릅니다.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발전을 하면서 변해버린 풍족하고 먹거리가 넘쳐나서
평화로운 세상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나약한 아이들은
펌프가 어디에 사용을 하는 물건인지
왜 이런게 야외에 작은 세면장을 만들어서 설치가 되어서 사용을 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얼라들은 없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50년 나이를 가진 멋진 주택을 천천히 차분하게 둘러보면서
야외의 작은 세면장 용도로 옛날에 사용한
여기에서는 차량의 구석 구석을 씻겨주기 위해서 사용을 했을거라고
생각을 하면서 추측을 해보고 있지만
오랫만에 옛날에 사용을 하는 펌프를 만나게 되면서
달동네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고 배가 고파서 먹을게 없어서 굶는 날들이
일상이었지만 불알 친구 녀석들을 만나서
깨끗한 비료 푸대자루를 동네 어르신분들에게 얻어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가져와서 동네 뒷산에서는 온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눈이 내리는 겨울 날씨에 비료 푸대 자루에 방데이를 붙여서 신나게 눈 썰매를
타면서 동네 얼라들을 불러서 모이면 신나게 눈 싸움을 하고 놀았던
달동네의 추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1972년에 처음 만들어졌을때 작은 연못으로 사용을 했을 거라고
추측을 해보고 있는데 지금은 사용을 하지 않아서 물은 없고
주변에서 날라온 낙엽이 가득하게 쌓여져 있습니다.
오래된 도자기라도 치우지 않고 옛날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남겨놔서
보관을 하면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뚱뚱한 남자가 생활을 하고 있는 고시원 건물도 1990년대 한옥 주택을
개조를 시켜서 사용을 하고 있어서 곤충 거미 친구들을 여기 저기서
만날수 있어서 신나게 거미줄을 쳐놓으셔서 생활을 하는 집인데 건드리지 않고
그냥 놔두고 있는데
오래된 도자기 내부를 장난으로 구경을 해봤는데 여기에서도 거미 곤충 친구들이
거미집을 짓고 열심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밖에서 관람 안내에 필요한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면은
주택 내부 관람도 가능하다고 해서 집앞의 출입문 앞에서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서성거리면서 들어가도 되는건가 한참을 고민을 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cctv 보안 용도로 설치한 감시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어서
서울시 시청에서 관리를 하고 있어서 상주를 하면서 근무를 하시고 계시는
직원분께서 주택의 출입문을 열고 나와서 관람에 대해서
괜찮습니다.
들어오세요.
친절하게 알려주시면서 주택 내부에 들어가서 관람 안내에 대해서 허락을 받아서
천천히 둘러보면서 구경을 할수가 있었습니다.
뚱뚱한 남자가 펜탁스 중고지만 고물 카메라를 잘못 구입해서 후회를 하고 있는데
자세한 사정도 모르시면서
여러장의 사진을 반복을 해가면서 사진 촬영을 하는 이유가 있는데
어차피 나중에 필요한 분들에게 카메라는 입문 용도로 나눔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볼것도 없을텐데 똑같은 사진 촬영을 여러장을 촬영을 하는지 궁금해 하시면서
고물 중고 카메라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시면서 장난으로 물어 보셨습니다.
한편으로는 곰곰히 돌이켜 보면서 생각을 해보면
cctv 보안 용도로 설치한 감시 카메라를 통해서 모니터링을 하면서
지켜보고 계셨다는 이야기로 해석을 할수가 있는데
카메라 사진 촬영에 대해서 허락을 받았지만
여러장의 사진 촬영을 반복을 하면서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섭다는 생각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께서 생활을 하시는 1층 넓은 방 생활 공간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은 벽면에
한국 장애인 시설에 대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도움을 주신
고마운 일들에 대해서 작은 고마움의 표현을 하고 싶어서 만들어진
시계를 선물로 건네서 드리고 받아서 50년 오랜 세월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 내부에 들어가서 천천히 둘러보면서 관람을 할수가 있어서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은 지방 문턱이 있어서
오른쪽에 깨끗한 실내화가 항상 준비가 되어서 신발을 벗어서
정리를 하고 실내화로 갈아 신으면 주택에 들어갈수가 있습니다.
뚱뚱한 남자는 1평도 안되는 아주 작은 방 크기를 가진 고시원에서 생활을 하면서
1년에 한번 청소를 할까 말까 그럴 정도로 게을러서 불알 친구 녀석들이 걱정이
되어서 무서운 보호자 역할을 맡은 유도 운동을 배우는 친구 녀석의 솥뚜껑처럼
커다란 매서운 손 바닥에 맨날 등짝을 처맞고 혼나가면서
시키먼 먼지가 방 바닥을 굴러 다니면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는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을 둘러볼수가 있도록 편하게 신고 다닐수 있도록 제공을 하고 있는
실내화에는 새까만 곰팡이나 먼지가 앉아서 시키먼 모습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 모습을 만났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 내부에 생활 공간
집 내부에 모습은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께서 1972년에 주택 공사가 끝나고
가족 분들과 모두 모여서 생활을 시작을 하시면서 안타깝게 서거를 하실때까지
생활을 하셨던 생활 흔적이 모두 고스란히 그대로 남겨져 있어서 진짜로 사용을
하셨던 모든 물품들이 전시가 되어 있어서 만날수 있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집 내부에 들어가서 천천히 둘러보고 구경을 하면서 그냥 농담이지만
중산층
부자집
사람들이 생활을 했었던 주택 내부의 모습이 사소한 일들이지만 궁금했었는데
50년전 옛날 옛날에
1972년 그리운 그때 그시절에 생활 모습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서 실내화로 갈아 신으면
주택 관리와 안전에 책임을 지고 근무를 하시는 직원분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고마운 도움을 받아서 1층부터 2층까지
자발적으로 나서서 주택 내부에 대해서 하나씩 친절하게 설명을 하면서
관람에 필요한 도움과 안내를 받아서 관람을 할수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실제로 존재를 하는 오천년전 선조분들부터 시작을 하는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학교에 다니면서 배웠던 올바른 역사에 대해서 강하게 부정을 하면서
있지도 않은 역사 이야기와 내용을 가지고 허구로 만들어서 지들끼리 믿고 다니는
한심한 나쁜 사람들이 찾아와서 못된 행동을 하면서 행패를 부리는 일들이 없는지
궁금해서 실례를 무릎쓰고 문의를 드렸는데
비슷한 일들은 있었지만 다행히 심하게 행패를 부린다거나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을 찾아와서 깽판을 피우고 사람이 사람을 배려를 할줄을 모르는 나쁜 행동을
일삼고 이상한 소리를 하고 돌아다니는 그런 분들은 계시지 않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정치에 입문을 하셔서 활동을 하실때 외교관분들에게 받은 고마운 감사에
선물이 진열장에 50년전과 똑같이 그대로 진열이 되어서 보관을 하고
커다란 진열장을 관람에 대해서 안내를 해주시는 직원 분께서 손수 열어서
보여주시면서 사진 촬영을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중국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이전부터
주택의 안전과 관리를 위해서 하얀 장갑을 착용을 하고 배운 그대로
젊음 나이를 가진 직원
동생이라고 부를수도 있는데
하얀 장갑을 먼저 착용을 마치고 귀찮은 실례가 안되는 경계선내에서
사적인 내용의 몇가지 간단한 질문이라도 궁금한 내용에 대해서 친절하게
알려줘서 천천히 둘러보면서 관람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의 출입문을 열고 허락을 받아서 들어가면은 정면에 마주쳐서
보이는 넓은 생활 공간 장소는 식탁으로 사용을 하셨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1972년에 주택의 공사가 끝나서 만들어지고 입주를 하시면서
오랜 세월을 보내시고 생활을 하셨을때 사용한 모든 식당 공간에
마련이 되어서 진열장에 진열된 식기 음식 그릇과
커피를 마실때 사용을 하시고
손님 접대에 필요한 뜨거운 커피를 담아서 내오는 도자기 식기
음식에 필요한 모든 그릇이 50년전에 옛날 생활 모습 그대로
남져겨 있어서 주택 내부 생활 공간을 관람을 하면서 잠시 시간이
멈춘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50년전 옛날에 처음 주택이 만들어졌을때 그대로 모든 생활 모습이
남겨져 있어서
2층으로 올라가는 옛날 나무 계단이 만들어지고 흔적이 남겨져 있어서
생활 모습을 알수가 있어서 귀중한 영상 기록을 남겨준 모습이 떠오릅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관람 동선은 2층으로 올라가서 관람이 필요하고 둘러볼수가 있도록
관람 동선이 만들어져 있어서
뚱뚱한 남자처럼 왼쪽 고관절 다리와 무릎에 통증이 심하고 아프시거나
평소에 몸이 아프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무작정 놀러가시면 안되고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 보셔서 관람을 하시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거동이 불편하시고 오늘은 심하게 몸이 아파서 움직이는 일들이
어려울것 같다는 판단이 내려지는데 그래도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놀러가셨다가 다치시면은 큰일납니다.
1970년대에 에어컨 냉방 시설
시원한 바람을 사용을 할수가 있는 선풍기 가전 제품이 아니라
에어컨 냉방 시설을 갖추고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1970년대에도 에어컨 냉방에 펠요한 전자 제품이 있다는
사실을 태어나서 처음 알았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1층에 다른 방은 귀한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따뜻한 커피를 내와서
대접을 하시는 응접실 용도로 사용을 하셨던 방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은
정면의 벽면에 에어컨 냉방 시설에 필요한 전자 제품의 모습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이름은 알수가 없는 중소기업은 50년이라는 오랜 세월의 흐름을 따라서
사라졌지만
에어컨 냉방 시설 전자 제품의 옛날 모습과 형태를 만나고 그때에도
집에서 전기 공급에 문제가 없으면 시원한 에어컨을 편리하게 사용을 하고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층에는 커다란 응접실을 갖추고 있어서
귀한 손님들께서 멀리서 찾아오시면 따뜻한 커피를 대접을 해드리고
이야기 꽃을 피우는 담소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50년 오랜 세월이 흘러서 사용은 안되지만 옛날에 티비 브랜드
사용한 그대로 모두 보존을 시켜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관람을 하면서 필요한 도움을 주시는 고마운 직원분의 뒤를 방아리처럼
졸졸 따라서 나무 계단의 난간을 천천히 붙잡고 조슴스럽게 올라가면은
창가 자리에 故人최규하 전대통령께서 임명을 받은 임명장 수여식 종이가
모두 그대로 보존이 되어서 유리 진열장에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개인이 생각을 하고 판단을 내리기 나름이지만
아무리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을 했다고 하지만
반대로 생각을 해보면 올바르지 않은 잘못된 행동의 문제들 때문에
중립적인 입장을 지켜서 생각을 해보고 신중한 발언이 필요하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이름이 보입니다.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의 배우자,여사님
故人홍기 여사님께서 실제로 사용을 하시면서 즐겨서 읽으셨던
책들과 1970년대 당시에 실제로 사용한 사소한것 같지만
염주,
초기에 주민등록증까지 모든 물품들이 보관이 되어서 유리 진열장에
전시가 되어서 만날수 있었습니다.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께서 담배를 평소에 즐기시고 좋아하셔서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1970년대에 사용을 하셨던 담배갑의 비닐이 쭈그려도 라이타와 함께
같이 사용을 하셨던 모든 물픔이 진열된 모습이 보입니다.
흑백 한국 고전 영화 작품에서는 멋진 모습을 위해서 소품을 사용을 하는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이지만 선그라스 자외선 차단을 막아주고
피부를 지키는 패션 소품을 사용을 했다는 사실은 처음 뒤늦게 알았습니다.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께서 실제로 착용을 하시고 입으셨던
양복이 진열이 되어 있습니다.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께서 182cm
180cm를 넘어가는 커다란 신장과 체격을 가지고 있으셨다는 사실은
관람을 안내를 해주시는 직원분의 친절한 설명을 통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1900년대 대한민국은
근대의 새로운 외국의 신식 문물을 접하고 생활을 시작하면서
모든 일상 생활이 서양화 되어 가면서 조금씩 생활 모습이 변해가고 있을때
신장은 180cm 를 넘어가는 커다란 신장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은
외국인 선교사 활동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아니면
많지가 않아서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이라
제대로 끼니를 챙겨서 먹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무섭지만 얼라를 좋아하셔서 자상하게 챙겨주시는 양아부지께서도
185cm 를 넘어가는 그리운 그때 그시절 당시에 흔치가 않은 신장과
타고난 물려 받은 커다란 몸집을 자랑을 하고 계셔서 험악한 무서운 얼굴 때문에
조폭이 아닌데 오해를 받으셔서 몸에 문신도 없으실 정도로 심성이 착하시고 올바른
분이신데 여러차례 삼청 교육대에 억울하게 끌려 가셔서 고생을 하셨습니다.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께서는 커다란 180cm 를 넘기는 신장을 자랑을 하고
계시는데
구두
신발은 굉장히 작은 사이즈라서 아담하고 작은 발 사이즈를 가지고 계시는것
같다는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뚱뚱한 남자는
신장 160cm
체중 110kg(과체중 고도 비만)
왜소한 체격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신발(단화,운동화) 사이즈는 280mm
신발을 평소에 신고 다녀서 불알 친구 녀석들이 대발이라고 장난으로 놀리고
유도 운동을 배운 친구 녀석과 신발 사이즈가 똑같아서 좋은 신발이 있으면
선물이라고 아픈 친구 녀석을 고맙게 챙겨줍니다.
뚱뚱한 남자가 신고다니는 단화 신발 280mm 커다란 신발 사이즈와 비교를 해봐도
아주 작은 신발 사이즈 크기를 가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께서 해외에 나가서 유학을 하시고
공부를 하실때
어머님 전상서
이런 이름을 가지고 소중한 가족 부모님에게 올바르게 예의를 갖춰서
그리운 어머님에게 편지를 보내고 작성한
실제 자필로 작성된 편지의 내용을 공개를 해서 전시가 되어 있어서
천천히 둘러 볼수가 있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에서 1972년에 집이 만들어지고 공사가 끝나서 생활을 하시면서
그동안 사용을 하셨던 집에 필요한 모든 열쇠를 모아서 보존을 시켜서
전시를 해놓았습니다.
주택의 출입문,방문을 열때 필요한 용도로 사용을 하는 열쇠에 대해서
모두 정확하게 표식의 내용을 자세하게 적어놨습니다.
1970년대엣 사용한 낡은 수첩 종이에는
빼곡하게 중요한
연락처
성함
모든 필요한 기록이 자세하게 적혀져 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 내부에 생활 공간 모습은 50년 세월의 흔적이 남겨져 있지만
전등은 1972년 옛날로 다시 돌아가서 환경 오염에 심각한 문제를 주는
백열 전등을 다시 구하고 사용을 하는 일들은 어려워서
전등이 설치된 가구의 옛날 모습만 그대로 남겨져 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관람 안내를 위해서 도움을 주시는 고마운 직원 분에게
거실에 놓여진 소파 의자의 용도를 문의를 드리지 못했지만
그냥 앉아서 휴식 시간을 가지실때 사용한 의자가 아닐까 그런
추측과 생각을 해봤습니다.
2층의 한쪽 공간은 다양한
난
식물
석재
돌에 관련된 조각과 난 식물이 화분에 심어져 있는 모습이 보여서
관람에 필요한 안내를 도와주시는 직원분께서 아무리 나이가 젊은
동생이 나이를 가지고 있어도 하루종일 서서 목을 사용을 하고
서서 기다려주고 움직이면서 돌아다니는 업무가 쉽지가 않은
만만치 않은 힘든 일들입니다.
관람에 필요한 하루에 정해진 시간이 있어서
관리 시설 업무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관람에 필요한 안내에 필요한
고마운 도움을 주고 있는 직원분을 귀찮게 하기는 그래서 그냥 겉으로
유리창을 통해서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관람을 했습니다.
50년 오랜 세월이 흘러서 고장이 나서 지금은 사용이 안되지만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1972년에 집 건축 공사가 모두 끝나고 만들어지면서
처음 이름을 들어보는 1970년에 창립을 마치고 태어난 중소기업의
생소한 옛날 브랜드 영어 이름을 붙여서 만들어진 텔레비전은
50년 오랜 세월을 똑같은 자리에 배정을 받아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옛날에 텔레비전 가전 제품은
윗부분
뒷면에 동그라미 한국 방송국에서 쏴주는 전파를 받기 위해서
텔레비전 자체에 안테나를 설치를 하는 일들이 필요하고
지붕에는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서 필요한 안테나를 달아서
티비를 시청을 했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
비보 상자라고 부르는
텔레비전 가전 제품은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한때는 부를 나타내고
동네 방네에 자랑을 하면서
모든 동네 사람들이 마당에 모여서 신나게 , 즐겁게 티비를 시청을 하던
부의 상징을 나타내는 그런 그리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까지 뚱뚱한 남자는 집에
텔레비전
비디오 영상 재생 매채
비디오 테크 전자 제품
서민이 구입을 하기에 비싼 돈이 필요한 텔레비전이 없어서
텔레비전을 보고 싶으면 불알 친구 녀석들의 집에 놀러가서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허락을 받아서 챙겨주시는 맛있는 간식과
뚱뚱한 남자의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을 알아서 저녁을 몰래 챙겨 주셔서
따뜻한 밥을 배부르게 얻어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존심,자존감만 쓸데없이 강하신 아부지께서는 살아 생전에
친구네 집에서 밥을 먹을수 있는데
니가 거지 새끼냐면서 심한 욕을 하시고
술에 취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국민학교를 다니는 얼라를 빨가 벗겨서
밖으로 내쫓고
밥 한끼를 먹고 온게 무슨 그렇게 커다란 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몽둥이를 들어서 두들겨 패면서 하루종일 맞아가면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고사리처럼 작은 손을 싹싹 빌어가면서 잘못 했다고
빌면서 하루종일 서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얼굴은 맞아서 시퍼렇게 멍들고 아파도 국민학교에 다녀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촌지
하얀 봉투에 가득하게 돈을 담아서 몰래 뇌물을 건네주는게 어려운 형편을
알아서 아이가 다쳐서 문제가 있어도 관심을 가져주거나 신경을 써주고
진심으로 아픈 아이를 위해서 가까이 다가와 주시는
정말로 착하고 좋은 국민학교 선생님을 만나본 기억은 떠오르지 않고 없었습니다.
바보 상자
텔레비전
지금의 세상은 골동품 가게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진짜 옛날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어린시절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2층 다른 방은 서재로 사용을 하시면서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께서 사용을 하시고 손에 들고 읽으셨던
다양한 한자 문장 단어를 사용해서 책 제목이 만들어져서 내용이 적혀진
손때가 묻어 있는 책들이 커다란 서재를 메꾸고 가득하게 정렬을 시켜서
진열이 되어 있는 모습을 만났습니다.
2층 서재의 방 문을 열면은 정면의 벽에는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의 커다란 사진
故人최규하 전대통령의 배우자,여사님
故人홍기 여사님의 커다란 사진이 액자에 담겨져 있어서 만남의 시간을
가질수 있습니다.
사진 촬영은 허락을 받아서 괜찮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
故人홍기 여사님
사진 촬영 자료에 대해서 모자이크 , 얼굴 사진을 가려 드려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공개를 해도 괜찮은 일인지 걱정이 되어서 문의를 드려봤습니다.
상업적인 용도의 목적을 가지고 운영을 하는게 아니라
뚱뚱한 남자는 어차피 사람은 한번 살아봤자 얼마나 살수가 있을지 알수가 없는게
사람의 인생이라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앞날은 알수가 없으니 그냥 아름다운 추억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블로그 취미 생활읗 하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관람 안내에 필요한 고마운 도움을 주시고 설명을 해주시는
직원분에게 살짝 넌지시 문의를 드렸는데
사진의 얼굴은 공개를 하셔도 괜찮습니다.
안내와 허락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집안 내부 구조는 사진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당연히 조심을 하면서
필요한 영상 자료에 사용을 할때 다시 한번 확인을 해보고 사용을 하고 있지만
故人이 되버리신 분들의 사진 자료는 당연히 함부로 사용을 하면은 안되는
일들이라 얼굴 공개에 대해서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시는 위인이시지만
그래도 신중하게 사진 촬영 자료를 사용을 하는 일들이 필요해서
직원분에게 문의를 드려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커다란 서재에는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께서 책을 읽으시면서
손때가 가득하게 추억의 흔적이 묻어 있는 다양한 책들의 모습을
서재로 사용을 하시던 커다란 방에서 만날수 있었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2층을 향해서 계단을 올라다니고
2층에서 계단의 난간을 천천히 붙잡고 내려오면은
벽면에는 활발하게 정치인으로써 행보를 보여주시면서 활동을 하실때
촬영한 칼라 색상의 소중한 필름 사진 자료를 복원을 시켜서
가지고 있는 사진 자료를 나무 액자에 소중한게 담아서 자택의 벽면
내부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어서 설명 내용 문구를 붙여서
공개를 해놨습니다.
뚱뚱한 남자는 사진 촬영에 취미 생활을 가지고 관심이 많아서
어떤 필름 카메라 사진 촬영에 필요한 장비를 사용을 했는지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일들에 대해서 문득 카메라 사진 촬영 장비가
궁금해졌습니다.
뚱뚱한 남자처럼 왼쪽 고관절 디라와 무릎에 통증이 심해서 아프고
몸이 아파서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을 찾아가서 관람을 하시고 싶어서 준비를 하시는 분들은
2층의 높은 계단 난간을 붙잡고 관람이 필요한 동선이 있어서
무작정 방문보다는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서 찾아가시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중국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심각한 전염병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의 정책을 확인을 해보시면서
관람과 방문에 대해서 대문을 활짝 열고 개방을 시켜서
관람을 하면서 둘러봐도 괜찮을지 확인을 먼저 하고
놀러가시는게 좋습니다.
뚱뚱한 남자도 서교동 동사무소 건물에서 나오기 이전에
백팩 가방에 챙겨 놓은 진통제 복용 약물을 열심히 챙겨서 먹고 찾아왔지만
그래도 다리에 통증이 생기고 아파서 천천히 계단 난간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나무 계단을 걸어서 1층에 내려왔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1972년에 만들어진 주택은 옛날 모습 그대로
나무 계단이 만들어져서 2층에 필요한 일들이 있을때 올라 다니고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오랜 세월을 보내시고 생활을 하셨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서
관람에 필요한 고마운 안내와 도움을 받아서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관람을 하고 둘러보면서 뚱뚱한 남자는 언제 한번 이런 집에서
생활을 해볼수 있을지.....?
이런 멋진 집에서 하루만이라도 잠을 자고 눈을 떠서 밝은 아침 햇살이
반겨주는 넓은 주택에서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 내부의 생활 공간을 둘러보면서 관람에 필요한 고마운 도움을
주시고 설명을 해주시는 직원분에게
이렇게 넓은 정원을 가진 멋진 집에서 하루만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농담을 했더니 직원분께서 무뚝뚝하다고 오해를 하고 있었는데
커다란 웃음을 보여주면서 웃으십니다.
안되는 일인데 뚱뚱한 남자가 고집을 피우고 땡강을 피우고 억지를 부려서
칭피하기는 하지만
1972년에 만들어진 주택의 내부 생활 공간중에서 가장 중요한
화장실 시설이 50년전 옛날 옛날에 모습 그대로 남겨져 있을지
궁금해서 화장실 출입문을 열어서 구경을 했는데
흔적만 남겨져 있어서 파랑색,청색을 가진 바닥에 깔아서 만들어진
타일만 50년 세월의 흔적을 견디고 있어서 옛날 모습이 그대로
남겨져 있습니다.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용무를 보고 처리를 해야 하는 화장실 시설은
50년 오랜 세월이 흘러서 시설 보수와 관리가 필요하고 심하게 망가지면은
교체를 진행을 하면서 유지 보수와 수리가 들어가는 일들이 생겨서
1972년에 처음 주택이 만들어졌을때 바닥에 들어가는 타일은 옛날 모습
그대로 세월의 흔적이 남겨진 모습을 만났습니다.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께서는 180cm 를 넘어가는 커다란 신장을 가지고
자랑을 하시고 계셔서 그런지 화장실 시설의 천장이 낮으면 머리가 닿을수 있는데
천장의 구조는 그렇게 옛날 주택의 모습치고는 낮다는 생각은 들지가 않았습니다.
배다른 형제분들
이복 형제분들중에서
제일 첫번째 이복 누님의 충청북도 청주 옛날 어린시절에
1980년대
1990년대
명절에 놀러가면은 화장실 천장이 굉장히 낮아서 국민학교를 다닐때
6학년 나이에 시원하게 빛나는 까까 머리를 깍아서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불알 친구 녀석은 160cm
뚱뚱한 남자는 125cm 아주 작은 신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복 형제 첫번째 큰누님의 청주 하숙집에 놀러가서 화장실이 급해서
사용을 하면은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천장이 낮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나올때 나도 모르게 머리를 들었다가 천장에 머리를 박아서 다쳐서
빨간 약을 발라주시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1970년대
1980년애
뚱뚱한 남자는 달동네에서 가난하게 생활을 하면서
사람의 무거운 체중,하중 255kg 무게까지 충분하게 견디고 받쳐주는
나무 발판 받침대 위에서는 가득하게 산을 쌓아서 똥과 똥물이 넘치기 일보직전에
똥을 발판 삼아서 기어 올라와서 나무 발판 받침대 위에서 아주 그냥
신나게 기어 다니면서 구르고 놀고 계시는 구데기 애벌레를 발로 밟아서
애꿋은 소중한 작은 생명을 다치거나 죽이지 않도록 조심을 해가면서
동네 어르신분들 할아버지,할머니께서는
1년을 넘도록 사람의 힘을 사용해서 깊숙하게 구멍을 파내서 만들어지고
아부지께서도 항상 얼라들에게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신신 당부를
하시면서 빼놓지 않고 잔소리를 하시면서 때로는 얼라가 똥을 싸는
모습을 지켜봐야 안심을 하신다면서 걱정이 되셔서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화장실의 출입문을 열어 놓은 상태로 얼라들이 똥을 싸는
얼라의 인상은 세상을 다산놈 마냥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끙끙 거리는
소리를 질러가면서 손에는 신문지 종이를 소중하게 손에 꽈악 붙잡고
똥을 싸고 있는 재미 있는 얼라 개구장이 말썽 꾸러기
아들내미 녀석을 다치지 않도록 가까운 곁에서 지켜주시고
얼라들이 똥물에 빠져서 깊숙한 구덩이를 빠져 나오지 못해서
죽는 사고가 다반사였던
실제로 자주 일어난 추락 사고에 관련된 무서운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얼라들을 잔뜩 겁을 주시고
방뎅이.엉덩이게 닿을듯이 말듯이 가득하게 쌓여서
똥차를 불러서 화장실의 똥을 비우고 청소가 필요한
나무 출입문으로 만들어져서 눈이 내리는 영하 30도 추운 겨울
날씨에 찬바람이 쌩쌩 들어와서 방뎅이를 얼어 붙게 만드는
고약하지만 향기로운 냄새가 멀리서 풍겨오는 달동네 아이들은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을 했습니다.
푸세식 화장실은 거리도 어찌나 멀던지 그래서 가난한 달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공통 주택은
작은 소변은 차가운 방의 구석에 지나다니면서 발에 채여서 오줌을
방 바닥에 쏟지 않도록 구석진 안전한 자리에 요강을 놔두고
작은 오줌 물을 버릴때 사용을 하면서
커다란 볼일 똥만 급하면 4계절내내 영하 30도의 추운 날씨에도
멀리에 떨어진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을 했습니다.
중산층
부자집 , 나으리들이 생활을 하시는 주택 내부의 일상 생활 공간에
현대식 , 서양식 편리한 화장실을 갖추고 사용한 모습을 보면서
1970년대의 단편적이지만 생활 모습에 대해서 알수가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구데기 , 애벌레가 기어 다니면서 놀고 있는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을 해보고
대한민국이 엄청난 발전을 하면서
사라진것 같지만 아직은 남아 있는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을 해봤던 달동네에서 살았던 얼라는
수세식 화장실이 옛날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
故人홍기 여사님께서
1층에 마련이 되고 만들어진 넓고 넓은 방 생활 공간에 터전을 잡아서
기거를 하시면서 생활을 하셨습니다.
관람에 필요한 고마운 도움을 주시는 직원분께서 하얀 장갑을 착용한 손으로
화려한 문양을 가진
겉으로 보이는 엄청나게 비싼 고가의 가격을 자랑하는 진짜 나무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진 장롱의 문을 열어서 50년 세월이 지나도
故人최규하 전대통령님
故人홍기 여사님께서
직접 이불을 덮으며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잠을 주무시면서 생활을 하실때
사용을 하셨던 진짜 목화 따뜻한 보온 기능을 가진 목화,솜 이불이 가득하게
장농을 메꾸고 있는 모습을 모두 공개를 하면서 보여주셨습니다.
서울특별시 지방
서교동 지역의 서울 대중 교통 사용과 이동이 편리한
서울 젊은 얼라들과 처자들의 신나는 놀이터
홍대 대학교 건물과 365일 사람의 인파가 끊이지 않고 북적 거리는
홍대 거리 시내 중심과 가까운 거리에 자리를 잡아서 만날수 있는
일상 생활 장소에 1972년부터 5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똑같은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가면서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실제로 생활을 하시고 거주를 하시면서 안타깝게 서거를 하실때가지 생활을 하셨던
일상 생활 장소 주택을 만나서 관람에 필요한 고마운 안내와 설명을
들으며 도움을 받아가면서 관람을 할수가 있었습니다.
해외 국가에서 태어나고 거주를 하면서 생활을 하시고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알게 되면서
한국의 매력에 깊게 빠져서 한글 언어 공부를 시작을 하시면서
여기에 한국의 오랜 전통을 가진 그동안 숱한 아픔과 상처들 다양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해외 국적을 가지고 계시는 외국인 분들께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별다른 통역은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족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한국어를 사용을 하고 의사 소통이 가능해서
한국 친구들과 모여서 함께 여유로운 시간 일정을 만들고 비워서
서교동 故人최규하 전대통령 가옥
주택을 찾아와서 둘러보면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배워 가시는 분들이
계셔서 찾아오시고 계십니다.
한국 인터넷 사이버 공간의 나쁜 보수적인 인터넷 사이트
나쁜 회원들
잘못된 역사와 기록 나쁜 일들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고 생각을 하시는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
올바른 행동을 보여주면서
솔선 수범 모범을 보여주는 일들이 필요한
생각이 올바르게 깨어 있는
착한 올바른 어르신이라고 불려질 자격이 없는
창피한 어르신분들이 세상에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만날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 국가를 선택을 받아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대한민국 국적을 받아서 생활을 하는 한국 사람으로써
학교를 다닐때 올바른 역사 교육을 들으며 수업을 배워서
대한민국의 아픈 상처와 그동안 숱한 역사에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배워 나가고 깨달음을 얻으며 알아가면서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역사의 기록에 없는 허구의 내용을 가지고
가상의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그런 엉터리 내용을 믿으며
잘못된 정보를 공유를 하면서
한국의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 엉터리 잘못된 정보의 내용을 가지고
얼굴이 저절로 빨개질 정도로 창피하게 퍼트리고 다니는
사람이 사람을 배려가 하는 올바른 일들이 아니라
손가락질을 하고 입에 담기에 민망한 욕설을 퍼부어 가면서 조롱을 해대고
비웃고 즐기는
대한민국의 진짜 역사 기록에 남겨진 모습에 대해서 강하게 부정을
하면서 절대로 아니라고 인정을 할려고 하지 않는
아주 못된 나쁜 사람들은
(국민학생까지 공과 사를 구분을 할줄을 모르고
싸가지 없는 보수 성향에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 가입이 끝나서 활동을 하고
한국 유튜브에 故人 사망한 분들에 대해서 함부로 조롱을 하는 동영상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역겹고 추하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올바른 역사에 대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편견을 버리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가까이 접근을 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배워나가고 노력을 하고 있는
해외 국적을 가지고 한국을 찾아와서 생활을 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 할줄을 알고 반성을 하면서 올바른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하면서
다시 배워서 나가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