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8. 04:28ㆍ일상 생활
5년만에 5번째 고향 대전광역시 지방에 개인적으로 볼일이 생겨서
오랫만에 대전 토박이의 고향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50살 나이를 처먹고 결혼도 하지 않고 고시원 1.5평 좁은 방에서 혼자 생활을 하면서
왼쪽 고관절 다리가 썩어가고 몸이 아파서 변변찮은 직장도 없고 일을 다니지 않으니
이러한 모습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버지는 똑같은데 어머니가 서로 다른
배다른 형제 , 이복 형제 분들은 110kg 과체중 고도 비만 환자의 방문에 대해서 그렇게
썩달가워 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명절 연휴 설날을 앞두고 썩달갑게 생각을 하지 않고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존재라면서 업신 여기고 무시를 당하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더라도
안부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오랫만에 대전광역시 지방 대전 토박이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명절 연휴 설날을 앞두고 지금은 계시지 않지만 군대 입대 이전까지 엄마와 아빠와 함께
마지막으로 생활을 했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남겨진 다시는 돌아갈수가 없는 그리운 그때 그 시절이
너무나도 사무치게 그리워서 부모님은 계시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인사를 드리고 함께 살았던
추억이 가득한 집과 골목길이 재개발로 사라지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한번더 찾아가보고 싶었습니다.
소제동과 삼성동 행정 구역 경계 사이를 두고 있는데 40년전 옛날 모습이 그대로 남겨진
골목길과 집들이 모두 재개발로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마음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1990년대에 군대 입대를 앞두고 아빠와 엄마와 함께 생활을 하면서 엎어지면은 코가 닿을
가까운 거리에 이발소 가게가 있어서 아무래도 아버지는 살아 생전에 머리를 깍는 일들이 필요할때
이발소 가게에 놀러가서 머리를 깍으셨습니다.
110kg 과체중 고도 비만 환자는 서울특별시 지방은 넓고 넓어서 이발소 가게는 엄청나게 많은데
머리를 잘깍아주는 마음에 드는 이발소 가게를 만나는 일들이 어렵습니다.
2021년 10월달 작년에 한번 아주 짧게 머리를 짜른 이후에 그동안 머리를 짜르지 않고 귀찮지만
그냥 놔두고 있다가 머리가 지저분해지고 깍아야 할때가 되어서 마침 대전광역시 지방 대전 토박이
5번째 고향에 내려왔을때 이전부터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대창 이용원 가게에 놀러갔습니다.
40년 오래전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삼성동 , 소제동 행정 구역을
경계를 사이로 두고 있는 골목길에 가득한 집들과 추억은 이제는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속으로 간직을 해야만 한다는 서글픈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맨위에 있는 사진을 잠시 구경을 해보면 새롭게 차량이 다닐수 있도록 만들어진 도로의
원래 모습은 40년전 옛날에 사람이 살았던 집들과 정겨운 골목길들을 모두 밀어버리고
재개발을 통해서 지금의 이렇게 넓은 새로운 도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2018년 3년전만 하더라도 110kg 과체중 고도 비만 환자가 1990년대에 야간 계룡 공업 고등학교를
다닐때 정문 바로 앞에 있었던 추억이 담겨진 문방구와 교복 가게가 있었던 작은 건물은 재개발을
시작하면서 모두 사라지고 차량이 다니는 도로가 만들어져서 옛날 모습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40년 오랜 세월동안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았던 골목길에 위치한 도심 산업 개발의 폐해로
사람이 사용을 할수가 없지만 우물이 있었던 자리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2018년까지만 하더라도 40년전 옛날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던 동네가 불과 3년여만에
재개발 사업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골목길 몇군데만 옛날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대창 이용원에 놀러갈려고 준비를 하면서 대중 교통 버스를 사용을 해보면
대전광역시 지방은 여전히 아직도 대중 교통 버스 노선과 사용은 굉장히 불편합니다.
2018년까지만 하더라도 40년전 옛날 모습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는데 2022년 지금은
옛날 모습은 일부만 흔적이 남겨져 있고 재개발 사업이 들어가면서 차량이 다닐수 있도록
넓은 도로가 만들어졌습니다.
건강한 어른은 천천히 직진을 하면서 걸으면 대전역 건물을 만날수 있는데 40년전 옛날과
달라지지 않은 모습은 아직도 재개발 사업이 진행된 도로 구간은 대중 교통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원래는 사람이 살아가는 집들이 가득한 골목길이었는데 재개발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리고 아무리 명절 연휴를 앞두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의 유동 인구가 없어서
거리는 썰렁하고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대창 이용원에 놀러갈려고 멀리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천천히 길을 걸으면서
젊음 나이가 부러운 아이들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꾸려나가는 투명한 유리 창문으로 만들어진
물레방아 조형물과 커피숍 가게를 만났습니다.
1990년대 아빠가 살아 생전에 엎어지면은 코가 닿을수 있는 천천히 걸음을
걸으면 집에서 5분이면은 도착을 할수가 있는 가까운 거리에 이발소 가게가 있어서
머리를 깍는 일들이 필요할때 자주 놀러가셨습니다.
아빠와 엄마와 함께 대전광역시 지방 삼성 1동 마지막 집에서 함께 생활을 했었던
행복한 그리운 시절에 왜 나는 그때 대창 이용원 이발소 가게를 몰랐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기억이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수요일인가 목요일인가 정확하게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데 휴식 시간을 가지시는
쉬는 날이라고 기억을 하고 있어서 혹시나 몰라서 전화통화를 걸어서 문의를 드렸는데
명절 연휴 설날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정상적으로 이발소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하신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받아서 마침 머리를 깍는 일들이 필요해서 놀러갔습니다.
1990년대 엄마 아빠와 함께 마지막으로 생활을 했었던 아픈 기억도 많지만
아름다운 즐거운 추억도 많았던 40년전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골목길은
재개발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슬퍼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대창 이용원을 찾아가는 골목길 입구는 원래의 옛날 모습은 가게가 있었는데 사라지고
바로 건너편에 조그만 슈퍼 가게는 아직도 할머니께서 혼자 가게를 꾸려나가면서
운영을 하고 계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대창 이용원 가게 바로 옆자리에 있어서 만날수 있는 세탁소 가게 건물은 벌써 어느새
몇십년의 세월이 흘러서 지나갔는데 아직도 여전히 옛날 모습 그대로 똑같이 자리를 지키고
장사를 하시고 계시는 반가운 모습을 만났습니다.
대창 이용원 이발소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전에 세월의 흔적을
느낄수 있는 유리로 만들어진 출입문에는 보라빛 색상으로 대창 이용원
이발소 가게의 상호 간판의 이름과 처음 이발소 가게를 개업을 하면서 시작한
1971년이라는 날짜가 명확하게 적혀진 명판이 붙어 있습니다.
사글세 정겨운 손 글씨로 직접 작성을 하면서 월세 방을 놓는다는 글씨가 적혀진
종이가 낡은 출입문에 부착된 정겨운 모습을 만났습니다.
대창 이용원 이발소 가게의 낡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은 왼쪽 방향으로
벽면에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대창 이용원 가게를 꾸려나가면서 운영을 하시고 계시는 이발사 선생님의
사진이 액자에 담아서 벽면에 걸려져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엄마와 아빠와 함께 생활을 했었던 이제는 재개발로 사라져 버린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옛날에 살았던 집과 주변의 골목길을 열심히 사진 촬영을 하면서
시간이 늦어져서 오후 저녁 18:00 마감을 앞두고 있는 시간에 겨우 도착을 했습니다.
대창 이용원 이발소 가게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머리를 깍기 위해서
찾아오신 손님분들이 계셔서 출입문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낡은 소파 의자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명절 설날 연휴를 앞두고 있어서 이발사 선생님께서는 몸도 피곤하시고 휴식 시간이
필요하신데 이번주는 계속 대창 이용원 이발소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받아주고 계셨습니다.
지금은 구경을 하기가 어려운 옛날에 많이 사용을 했었던 뜨거운
양철 난로가 가게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얼굴에 면도가 필요한 손님이 계실때
붓을 양철에 문질러가면서 따뜻하게 만들어서 사용을 하시고 계십니다.
머리를 깍을 순서가 찾아오면은 바로 얼굴 앞에도 난로가 있어서 머리를 짧게 깍아달라고
부탁을 드리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 있다가 보면은 피곤해서 그런지
졸음이 저절로 쏟아집니다.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깍으면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나무로 만들어진 기둥에는 그동안
대전광역시 지방에 거주를 하시고 생활을 하면서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을 받아서
칭찬을 들으며 상장을 수상한 영광의 날짜들을 기록을 남기면서 촬영한 사진 자료가
액자에 담겨져 있어서 잠시 쳐다보면서 구경을 해볼수 있었습니다.
대창 이용원 이발소 가게에 마련된 낡은 소파 의자에 앉아서 천천히
머리를 깍을 순서를 기다리면서 구경을 해보면 이발사 선생님의
사모님께서 이발소 가게에 나오셔서 아침부터 퇴근 시간까지 함께 일을 하고 계십니다.
면도가 필요한 손님이 계시면 이발사 선생님께서 곧바로 면도를 할수가 있도록
손님이 앉아 있는 의자를 뒤로 젖혀서 뜨겁게 달구어진 수건을 얼굴에 덮어서
얼굴에 가득하게 자라난 수염을 깍을수 있도록 미리 바쁘게 준비를 하시고 계십니다.
이발사 선생님의 자녀 분들의 나이가 이제는 어느새 벌써 6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
아직도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오래된 낡은 이발소 가게를 꾸려나가면서 고생을 하시고
계시는 모습이 싫어서 이제는 그만 휴식 시간을 가지고 편안하게 쉬시면서 선생님 두분께서
여행을 다니시기를 권유를 하면서 자녀 분들께서 간절하게 바라고 있지만 아직도 오랜 세월의
흔적들과 아름다운 추억이 묻어 있는 이발소 가게를 꾸준하게 운영을 하시고 계십니다.
이발사 선생님에게 사진 촬영에 대해서 문의를 드리고 허락을 구하면서
사진 촬영이요~!
마음껏 사진 촬영을 하고 싶을때까지 사진기에 담으세요~!
사진 촬영을 하셔도 괜찮습니다~!
이발사 선생님에게 사진 촬영에 대해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급한 일들은 없기 때문에 머리를 깍을 순서를 기다리면서 고물 중고 dslr 카메라를
손에 들고 열심히 사진 촬영을 하면서 추억을 남겼습니다.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서 먼저 머리를 깍고 계시는 남자 어르신 손님분께서 시간이
오래 걸릴거라고 예상을 했는데 긴머리를 그대로 유지를 하면서 그냥 살짝 다듬어주는
정도로만 머리를 깍아달라는 요청을 하시고 끝나서 금방 순서가 찾아왔습니다.
사진은 추억으로 남겨서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 할수가 있지만 소제동 , 삼성동 행정 구역
경계선 지역에 위치한 40년 오랜 세월과 역사를 자랑하는 수많은 정겨운 집들과
골목길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으며 아픈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다시는 돌아갈수가 없는 젊은 20대 청춘 시절에 머리는 원없이 길러봐서 지금은
타인의 시선은 신경쓸 필요가 없어서 규격은 2mm 이발 기계를 사용해서
머리가 하얗게 보여도 상관이 없어서 아주 짧고 깔끔하게 머리를 잘라주세요.
이발소 가게에 놀러가면은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대창 이용원 이발소 가게에 놀러가서 엎어지면은 코가 닿을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1990년대 월세 방에 거주를 하면서 아버지께서 머리를 깍는 일들이 필요할때
대창 이용원 가게를 찾아가서 머리를 깍으셨습니다.
대전광역시 지방 삼성 1동 1??-?6번지 월세 방에 거주를 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을 했는데
배다른 형제 , 이복 형제 분들이라도 명절 설날 연휴를 앞두고 안부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오랫만에 5번째 고향인 대전광역시 지방 대전 토박이라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말씀을 드리면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서 머리를 깍을때 짧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엎어지면은 코가 닿을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엎어지면서 코가 깨져서 큰일난다.
이발사 선생님께서 재미있는 농담을 하시면서 커다란 웃음을 보여주시고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내가 아주 그냥 예쁘게 머리를 잘라주시겠다고 선언을 하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창 이용원 가게에 놀러가서 아주 짧게 해서 깔끔하게 머리를 잘라주세요.
짧은 머리를 부탁을 드리면 귀 구렛나루 주변과 제비츄리 꼬리가 자라나는 뒷머리는
이발 기계를 사용해서 주변 정리가 끝나면 다음에 오로지 가위만 사용해서
짧은 머리를 잘라주시고 다듬어가면서 마무리를 하십니다.
머리를 깍고 끝나면 면도는 별도로 돈을 드리고 면도를 받아야 하지만
이발사 선생님께서 서울특별시 지방의 마포구 지역에 위치한 멀리서 손님이 찾아왔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면도 비용을 받지 않고 손님을 위해서 면도를 해주시면서 챙겨주시는
황송하게도 고마운 따뜻한 정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머리를 깍는 이발이 모두 끝나고 이발사 선생님에게 90도로 허리를 정중하게 굽혀서
여러차례 인사를 드리고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의 표현을 담아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만을 진심으로 바라며 어르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의 인사 말씀을 전해 드렸습니다.
대전광역시 지방에 놀러가서 사진 촬영할 일들이 있어서 왼쪽 고관절 다리가
말썽을 피우지 않으면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올라가다 보면은 오래된 중화요리집
음식점 가게가 있어서 자장면을 챙겨먹고 대창 이용원 이발소 가게에 놀러가서
머리를 깍을 생각입니다.
대창 이용원 이발소 가게에 놀러가서 머리를 깍고 끝나서 잠시 도와드리는
일들이 생겨서 끝나고 백팩과 카메라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저녁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대창 이용원 이발소 가게의 주인공 이발사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언론 뉴스에
보도된 내용 그대로 소제동 , 삼성동 행정 구역 경계 지역에 위치한 지금의 자리에서
재개발 사업에 들어가면서 철거가 확정이 되어서 아쉽지만 이제는 떠나가야만 하는
그날까지는 이발소 가게 문을 꾸준하게 열어서 손님을 기다리시겠다고
한국의 언론 기자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시면서 들려준 기사의 내용이 떠오릅니다.
자녀분들께서는 부모님 어르신 두분께서 이제는 휴식 시간을 가지고 편안하게
여행을 다니시면서 여생을 보내시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어서 귄유를 해보고 있지만
이발사 선생님의 의지에 대해서 아무리 강력한 반대를 해봐도 어쩔수 없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0년 오랜 세월동안 아름다운 추억들과 흔적들이 담겨진 골목길들과 집들이 모두 재개발로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은 여전히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골목길에 자리를 잡아서 생활을 했었던 집들을 모두 철거를 하면서 밀어내고 그나마
남겨진 집들이 있을지 궁금해서 정겨운 골목길을 따라서 천천히 길을 걸어보면은
빈집도 많이 보이지만 아직도 그대로 머물고 집에서 생활을 하시고 계시는 동네 주민분들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이발소 가게 자리를 다른 장소를 찾아서 옮겨가더라도 결코 쉬운 일들은 아니지만
누군가 50년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발 기술을 배우고 물려 받아서 이발소 가게를
꾸준하게 운영을 해나갈수만 있다면 좋을것 같다는 그런 작은 간절한 바램들과
생각들이 머리속을 스쳐서 지나갔습니다.